나의 친구, 그의 아내 (2008), 신동일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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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친구, 그의 아내 (2008), 신동일 감독

금동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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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신동일 

배우: 박희순 (재문 역), 장현성 (예준), 홍소희 (지숙)



|줄거리|요리사 재문과 미용실을 운영하고 있는 지숙은 넉넉하진 않지만 더 큰 미래를 위하여 이민을 준비하고 있는 신혼부부다. 그리고 재문에게는 군 복무때부터 지금까지 우정을 나누고 있는 친구 예준이 있다. 예준은 아직 미혼이지만 외환딜러로 누구보다 치열하게 하루를 보내고 있다.  


재문과 지숙이 꿈꿨던 이민은 좌절되고 지숙은 민혁을 출산 한다. 하루하루의 권태로움을 이기지 못하던 지숙은 파리 헤어 워크샵에 참석하기로 하고 며칠 집을 비우게 된다. 예준은 성공가도를 달리지만 동료들의 시기와 질투로 삶에대한 공허함과 외로움이 극에 달하고, 오랜만에 재문의 집에 서 술잔을 기우린다. 하지만 재문이 자리를 비운사이 회사에서 걸려온 전화에 울음이 터진 민혁을 돌보지 못하고 예준은 큰 사고를 저지른다. 


재문이 모든 죄값을 스스로 받기로 결정하고 지숙을 잘 부탁한다는 말을 남긴다. 아무런 변명도 하지 않는 남편이 이상하다고 느끼지만 예준의 설득에 못이겨 지숙은 유학길에 오른다. 몇 년 후 지숙은 유학을 마치고 전문 헤어샵을 성황리에 오픈지만 예준은 재문에게 알리지 않고 지숙과 은밀한 관계를 맺는다. 예준과 미국행을 결심한 지숙은 재문과 예준의 전화를 엿듣게 되고 민혁이 사고사를 당하게 된 정황을 그때야 모두 알게된다. 지숙은 예준에게 복수하면서 자신의 목숨도 버리려 하지만 재문은 친구와 부인을 모두 구하려 최선을 다한다. 







|리뷰| 블로그나 인터넷 카페의 리뷰를 보면 여성배우가 전혀 유혹적이지 않았다거나 몰입되지 않는 에로영화라는 둥의 글을 쉽게 볼 수 있다. 한국판 영화 포스터에도 '지독한 우정, 비밀스러운 유혹'이라는 글귀가 프린트되어 있는데, 신동일 감독이 실제로 의도하고자 했던 것이 마냥 '불륜으로 퇴색된 우정'은 아닐 것이다. 나의 리뷰는 사회경제적(socioeconomic) 지위와 그에 따른 관계 형성과 지속이라는 것에 중점이 맞춰질 것이고, 영화를 만든 사람들이 "진짜" 의도했던 것은 바로 이 것이 아닐까 기대 해본다.


셰프(chef:전문 요리사)라고 본인을 소개하고 싶은 재문을 사회적으로 성공한 외환딜러 예준은 쿡(cook:주방장)이라고 말해야 한다며 콕 찝는다. 친구의 직책에 등급을 매긴 것이다. 직장에서도 그의 계급의식은 돋보인다. 승승장구하는 자신의 실적에 부러움을 갖는 동료들의 칭찬에 으쓱해 하고 같이 살아가자며 노하우를 공개해 달라는 동료들에게 경쟁사회는 어차피 밟는자가 성공하는 거라며 소리지른다. 직장에서 개인의 성공에 대한 지나친 시기와 질투, 따돌림도 현대 사회문제로 지적할 수 있지만 오히려 혼자 성공하려 노력하는게 당연한 것이라 잘라 말하는 예준의 태도에서 성공에 대한 개인적 집착과 계급의식을 볼 수 있다.    


재밌는 점은 예준이 한 때 막시즘(Marxism)에 심취하여 '하늘 아래 만인은 평등해야 한다'고 주창하면서 군대 내부에 계급제를 반대했다는 것이다. 예준도 한때는 평등을 꿈꾸던 민주투사였던 것이다. 우리나라 보수,여당에도 민주독립에 이바지 한 분들이 대거 있다는 것도 함께 생각해 볼 만하다. 학생시절 많은이가 진보적 사상에 심취할 수 있는 반면 현실을 피부로 부딪치고 있는 직장인은 밥그릇 챙기기에 바빠 효율성을 앞세운 경제 논리를 추종할 수 밖에 없다는 "어른들"의 삶으로의 변화가 투영된 것은 아닐까. 


마르크스의 아름다운 부인이나 '민중혁명'에서 친구 아기의 이름을 지으려는 예준의 목소리는 생각하는 것과 행동하는 것이 일치하지 않는 현대인들의 모습을 반영하는 것일 수 있다. 신분의 차를 신경쓰지 않는듯 재문을 베프로 삼으면서 어려울때마다 경제적 지원도 마다하지 않지만, 머리 속에는 내가 이정도로 "지원"해주고 있다는 상하 관계까 형성되어 있던 것. 때문에 지숙과 재문사이에서 괴로워하던 예준이 "다 누구때문에 입에 풀칠하고 있는데?"라며 속마음을 분출해 버린다. 다시 말해 친구라는 이름으로 조건 없이 베풀어주었던 물심양면의 행동이 상하, 주종관계에서 이루어진 선처였였던 것이다.


그렇다고 예준을 죄인으로 악마로 손가락질 할 필요는 없다. 더 큰 죄인은 자본주의 경쟁사회 그 자체라고 할 수도 있고 위너에게 (바보같이) 쏟아주는 존경과 선망이라는 사회문화라고 할 수도 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자신의 아이를 사망하게 한 친구의 죄를 대신 받기로한 재문의 자세는 우정이라기 보다는 계급 사회에서 루저가 위너를 대하는 주종관계의 모습과 다르지 않다. 후반부에서 재문이 잘못했다고 미안하다는 말 한마디도 못하냐고 윽박지르지만 예준이 경제적으로 모든 보상을 다 했다고 보는 비인간적 자세 역시 "하늘 아래 만인은 평등하지 않다"는 자본주의 내의 계급사회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 아닐까 한다. 


이렇게 사회경제적 계급 차에 초점을 두고 영화를 보면 지숙이 파리로 워크샵을 가기 위하여 재문을 설득하는 장면에서 입은 붉은색 원피스와 예준을 살인하려는 장면에서 입은 붉은색 원피스는 계급투쟁을 선포한 마르크스와 그의 사상에 따라 진짜 행동하고 실천하는 자가 누구인지 말해주고 있다. 


이 작품은 자본가와 노동자라는 사회적 계급 대립이 개인적인 관계 속에 어떻게 녹아내리는지 보여줄 뿐 아니라 생각과 행동이 대립하는 보통의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릴 수 있다고 생각 한다. 




인상적이었던 장면. 예준이 건낸 두부를 보고 재문은 말한다. "내가 무슨 죄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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